버터가 너무 비싸 나라가 상금을 걸었다
19세기 중반의 유럽은 도시가 폭발적으로 커지던 시기였다. 공장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식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이 버터였다. 버터는 우유에서만 얻을 수 있었기에 생산량이 젖소의 수에 묶여 있었고, 냉장 기술이 없던 시절 여름이면 며칠 만에 산패했다. 군대의 보급 창고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장기 항해에 나서는 함선에 버터를 실으면 항구를 벗어나기도 전에 상하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프랑스 정부는 값이 싸고, 오래 견디며, 영양까지 갖춘 버터 대체품을 공모했다. 조건은 단순했지만 잔인했다. 버터와 비슷한 맛과 질감을 내면서도 가격은 절반 이하여야 했고, 몇 주가 지나도 상하지 않아야 했다. 수많은 응모작이 들어왔지만 대부분은 기름 냄새가 심하거나 상온에서 금세 굳어 버리는 실패작이었다.
야윈 젖소가 남긴 단서
이 공모에서 우승한 사람은 이폴리트 메주무리에라는 프랑스 화학자였다. 그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을 보고 있었다. 여물이 떨어져 몸이 마른 젖소도 젖을 계속 낸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 젖 속에 든 지방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는 소의 몸에 저장돼 있던 지방이 젖으로 옮겨 간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이 곧바로 실험 설계가 되었다. 소기름, 즉 우지에는 상온에서 단단하게 굳는 부분과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녹는 부드러운 부분이 섞여 있다. 그는 우지를 낮은 온도에서 압착해 부드럽게 녹는 부분만 뽑아냈다. 여기에 우유와 잘게 다진 소의 위 조직을 넣고 오래 저은 뒤 찬물에 식혀 굳혔다. 그 결과물은 지방이 80% 안팎인 노란 덩어리였다. 버터와 놀랄 만큼 닮아 있었지만, 이 덩어리에는 아직 이름조차 없었다.
이름은 진주에서 왔다
당시 화학자들은 동물 지방에서 진주처럼 반짝이는 지방산 하나를 분리해 마르가르산이라 불렀다. 그리스어로 진주를 뜻하는 마르가리테스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새 발명품이 식으면서 굳을 때 표면에 맺히는 방울이 꼭 그 진주빛을 닮아 있었다. 발명가는 자신의 지방 덩어리에 마가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함선의 보급 창고에서 여름을 넘긴 버터는 늘 골칫거리였다. 심사를 맡은 해군이 가장 높이 평가한 것은 맛이 아니라 보존성이었다. 이 물질은 몇 주가 지나도 쉽게 상하지 않았다. 버터의 지방은 우유 속 미량의 효소와 미생물, 그리고 수분과 함께 있어 산패가 빠르지만, 정제한 동물성 지방은 그런 요소가 적어 훨씬 오래 버텼다. 값은 버터의 절반 아래였다. 그러나 이 승리가 발명가에게 남긴 몫은 상금과 특허 한 장이 전부였다.
버터를 흉내 내려면 넘어야 했던 세 개의 벽
마가린이 버터를 대신하려면 세 가지 물리적 조건을 만족해야 했다. 첫 번째는 녹는점이다. 소기름은 40도가 넘어야 완전히 녹는다. 사람의 입안 온도는 대략 36도에서 37도 사이이므로, 소기름을 그대로 쓰면 입안에서 녹지 않고 미끈한 기름 막으로 남는다. 버터가 입에서 사라지듯 녹는 이유는 유지방의 녹는점이 체온 부근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물이다. 버터는 순수한 지방 덩어리가 아니다. 지방이 연속상을 이루고 그 속에 아주 작은 물방울이 흩어져 갇힌 유중수적형 유화 구조다. 우리가 버터를 촉촉하다고 느끼는 것은 이 물방울이 입안에서 터지며 수분을 내놓기 때문이다. 버터의 유지방은 지방산 조성이 제각각인 여러 종류가 섞여 있어 24도 부근부터 조금씩 녹기 시작하고 35도 부근에서 완전히 녹는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버터가 손끝의 온기만으로도 물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기름은 이 구간이 훨씬 높은 쪽으로 치우쳐 있어, 그대로 쓰면 아무리 얇게 발라도 입안에 기름 막이 남는다. 메주무리에가 압착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낮은 온도에서 굳는 부분을 물리적으로 걸러 내면, 남는 것은 체온 부근에서 녹는 부드러운 지방뿐이다.
세 번째는 색과 향이다. 정제한 소기름은 희멀겋고 특유의 기름 냄새가 강했다. 초기의 마가린 제조자들은 여기에 우유를 섞어 유청 단백질과 젖당을 더했는데, 이는 색과 향을 보완할 뿐 아니라 가열했을 때 버터처럼 갈색으로 변하는 성질까지 흉내 내는 효과가 있었다.
버터와 마가린은 사실상 같은 설계도다
버터와 마가린을 나란히 놓고 성분을 비교하면 구조가 놀랄 만큼 닮았다. 둘 다 지방이 80% 안팎이고, 나머지는 물과 소량의 단백질, 소금이다. 둘 다 지방이 바깥을 이루고 그 안에 물방울이 갇힌 구조를 가진다. 결정적인 차이는 지방의 출신이다. 버터의 지방은 우유에서 나오고, 마가린의 지방은 처음에는 소에서, 뒤에는 식물 기름에서 왔다.
입에서 느끼는 질감의 차이는 지방 결정의 크기가 만든다. 지방은 식으면서 결정을 이루는데, 빠르게 식히면 결정이 잘게 흩어져 매끄러운 질감이 되고, 천천히 식히거나 온도가 오르내리면 결정이 굵게 자라 서걱거리는 질감이 된다. 그래서 마가린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은 원료를 섞는 일이 아니라 식히는 속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일이다.
특허는 2년 만에 발명가의 손을 떠났다
1869년 프랑스에서 특허가 나왔고, 불과 2년 뒤 네덜란드의 버터 상인 형제가 그 권리를 사들였다. 이 형제의 공장은 훗날 세계 최대 생활용품 기업 가운데 하나의 뿌리가 된다. 정작 발명가는 1880년 파리 근교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고, 남긴 재산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기술은 그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 자랐다. 1902년에는 액체 상태의 기름에 수소를 붙여 단단하게 만드는 경화 기술이 특허로 등록되었다. 이 기술 덕분에 소기름 없이 식물 기름만으로도 마가린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원료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발명가가 살아 있었다면 상상하지 못했을 규모였다.
하얀 마가린과 주황색 알갱이
미국에서는 이 성공이 곧바로 거센 반발을 불렀다. 낙농업계는 마가린을 가짜 버터라고 부르며 규제를 요구했고, 여러 주가 마가린에 노란색을 입히는 것을 금지했다. 어떤 주는 아예 분홍색으로 물들여 팔도록 규정하기도 했다. 소비자가 버터로 오인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였다.
그래서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의 마가린은 하얀 덩어리로 팔렸다. 대신 봉지 안에는 주황색 색소 알갱이가 하나 들어 있었다. 가정에서는 그 봉지를 손으로 한참 주물러 색을 고루 퍼뜨린 뒤에야 빵에 발랐다. 색 하나를 둘러싼 이 신경전은 반세기 넘게 이어졌고, 마지막 규제가 풀린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마가린을 지배하는 세 개의 숫자
오늘날 마가린의 설계도는 세 개의 숫자로 정리된다. 첫째는 지방 80%다. 이 비율은 버터와 같은 수준으로, 법적으로 마가린이라는 이름을 쓰려면 대체로 이 선을 맞춰야 한다. 둘째는 물 16% 안팎이다. 이 물은 한 덩어리로 뭉쳐 있지 않고, 지름 5마이크로미터 정도의 방울 수억 개로 쪼개져 지방 사이에 흩어져 있다. 방울이 작을수록 혀는 물맛 대신 크림 같은 감촉을 느낀다.
셋째는 녹는점 32도다. 체온보다 조금 낮게 맞추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온도를 넘기면 입안에 미끈한 기름 막이 남고, 너무 낮으면 상온에서 흘러내려 형태를 잃는다. 결국 마가린의 품질은 지방 비율과 물방울 크기, 녹는점이라는 세 숫자의 균형에서 갈린다.
발명가는 잊히고 발명만 살아남았다
이폴리트 메주무리에는 약국에서 일을 배운 화학자였다. 그는 마가린 말고도 제빵과 제당 공정에 쓰이는 여러 기술을 특허로 남겼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그를 부유하게 만들지 못했다. 마가린 특허를 넘기고 받은 대가는 크지 않았고,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뒤에도 그에게 돌아온 몫은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해에 프랑스 언론은 그의 이름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발명은 두 차례의 세계적 식량난에서 수많은 식탁을 지켰다. 값싼 지방이 필요한 시대마다 마가린은 가장 먼저 호출되었다. 발명가의 이름은 잊혔지만, 이름 없는 노란 덩어리는 살아남았다.
주방에서 바로 쓰는 원리
마가린의 역사는 결국 지방을 다루는 세 가지 원리로 요약된다. 첫 번째로 지방은 녹는 온도가 식감을 결정한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버터가 빵을 찢는 이유도, 실온에 두면 부드럽게 발리는 이유도 모두 녹는점 때문이다. 두 번째로 물은 잘게 쪼개져 갇혀야 촉촉함이 된다. 소스를 만들 때 버터를 차가운 상태로 조금씩 넣어 저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방울이 고르게 흩어져야 소스가 매끄럽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결정은 식히는 속도가 크기를 정한다. 냉동실에서 온도가 오르내린 버터가 서걱거리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방 결정이 커지면서 조직이 거칠어진 것이다. 이 세 가지만 알아 두면 버터와 마가린, 생크림과 초콜릿까지 지방이 들어간 거의 모든 재료의 성질을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파이 반죽이 바삭해지는 것도, 아이스크림이 매끄러운 것도 결국 같은 원리 위에 서 있다. 파이 반죽에서는 차가운 버터 조각이 밀가루 층 사이에 남아 있다가 오븐 안에서 녹으며 수증기를 만들어 층을 벌린다. 버터가 미리 녹아 버리면 층이 생기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에서는 지방 결정과 얼음 결정이 함께 작아야 혀에 매끄럽게 닿는다. 온도가 오르내린 아이스크림이 서걱거리는 것은 결정이 굵게 자란 결과다. 지방을 다루는 요리는 언제나 온도와 시간의 문제이며, 마가린의 역사는 그 사실을 가장 이른 시기에 증명한 사례다.
마치며
한 사람의 관찰이 세계의 식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장비가 아니었다. 야윈 젖소를 보고 품은 질문 하나와, 그 질문을 실험으로 옮긴 끈기가 전부였다. 마가린은 버터를 이긴 적이 없다. 대신 버터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의 빵 위에 올라갔고, 그 자리를 150년 넘게 지켰다.
지금 냉장고 문칸을 열어 보면 그 결과가 그대로 놓여 있다. 버터를 고르든 마가린을 고르든, 우리가 고르는 것은 사실 지방의 녹는 온도와 물방울의 크기다. 발명가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원리는 매일 아침 빵 위에서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