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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프랑 상금을 받고도 빈민 묘지에 묻힌 통조림의 아버지, 니콜라 아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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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프랑의 상금, 그리고 빈민 묘지

한 남자가 국가로부터 12,000프랑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받았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수억 원에 이르는 돈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 뒤, 이 남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파리의 빈민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가 발명한 물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거의 모든 주방의 선반 위에 놓여 있다. 바로 병조림과 통조림이다. 세상을 먹여 살린 발명가는 어째서 정작 자신은 빈손으로 세상을 떠났을까. 그의 이름은 니콜라 아페르였다. 이 글은 한 요리사의 위대한 발명과 잔인한 몰락, 그리고 그 안에 숨은 과학을 함께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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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제과사, 보존이라는 집념에 빠지다

니콜라 아페르는 18세기 파리에서 이름을 날리던 제과사이자 요리사였다. 설탕에 절인 과일과 화려한 디저트로 귀족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그의 가게는 늘 손님으로 붐볐다. 그러나 그를 진짜로 사로잡은 것은 명성이 아니라 하나의 집요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음식이 상하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당시 사람들은 음식이 왜 썩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냉장고도, 방부제도 없던 시대였다. 아페르는 이 질문 하나에 무려 14년의 세월을 걸었다. 자신의 부엌을 실험실로 삼아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했고, 수많은 밤을 실패한 병들과 함께 지새웠다.

군대를 무너뜨린 것은 칼이 아니었다

18세기 유럽은 끊임없는 전쟁의 시대였다. 그런데 군대를 무너뜨린 진짜 적은 적군의 칼이 아니라 썩은 식량이었다. 병사들은 상한 고기와 곰팡이 핀 빵을 먹고 하나둘 쓰러졌다. 전투보다 굶주림과 식중독으로 죽는 병사가 더 많던 시절이었다. 원정을 떠난 군대일수록 보급은 절박한 문제였다. 나폴레옹은 이 문제를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군대는 위장으로 행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1795년, 파격적인 제안을 내걸었다. 음식을 오래 보존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12,000프랑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정부는 상금을 걸고 민간에 던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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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병 속에 가두다

수많은 학자가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 상금에 인생을 건 무명의 요리사가 바로 아페르였다. 그의 방법은 놀라울 만큼 단순했다. 음식을 유리병에 채우고, 코르크로 단단히 막은 뒤, 끓는 물에 통째로 넣어 오래 가열하는 것이었다. 그는 왜 이 방법이 통하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수천 번의 실패 끝에 이렇게만 하면 음식이 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아냈다. 마침내 병을 열었을 때, 몇 달 전에 넣어 둔 완두콩은 방금 딴 것처럼 푸르렀다. 아페르는 계절을 병 속에 가두었다고 외쳤다. 그 짧은 한마디에 14년의 세월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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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식품 공장

1810년, 프랑스 정부는 마침내 그에게 12,000프랑의 상금을 수여했다. 아페르가 이뤄낸 성과는 숫자로 봐도 놀라웠다. 완두콩과 당근 같은 채소부터 고기 수프와 우유, 심지어 과일까지 50가지가 넘는 식품을 병 속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1802년에는 파리 외곽 마시에 세계 최초의 식품 보존 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에서 만든 병조림은 프랑스 해군의 배에 실려 먼 바다로 나갔다. 몇 달간의 긴 항해에도 그 음식은 멀쩡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계절과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음식을 옮길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요리법이 아니라 물류와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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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대신 공개를 택하다

이제 아페르는 특허를 내 막대한 부를 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내건 조건은 정반대였다. 상금을 받는 대신, 그 비법을 책으로 펴내 모두에게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아페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이 발견은 나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그는 14년의 비밀을 세상에 통째로 내주었다. 그의 저서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수많은 사람이 그 방법을 따라 음식을 보존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어리석은 결정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페르에게 발명은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헌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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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특허로 돈을 번 사람들

그런데 아페르가 비법을 공개하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바다 건너 영국에서 피터 듀랜드라는 사람이 같은 해에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깨지기 쉬운 유리병 대신 금속 깡통을 쓰는 방식을 특허로 등록했다. 아페르가 세상에 거저 준 원리를, 다른 이들은 특허와 사업으로 바꿔 큰돈을 벌어들였다. 오늘 우리가 쓰는 통조림 깡통은 사실 아페르의 유리병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정작 원조인 아페르는 단 한 푼도 벌지 못했다. 발명의 열매는 그것을 상품으로 만든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아이디어를 가진 자와 그것을 소유한 자가 달랐던, 냉정한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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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를 삼킨 전쟁과 빚

세계를 바꾼 발명가는 어쩌다 빈털터리가 되었을까. 그의 몰락에는 몇 가지 잔인한 이유가 겹쳐 있었다. 첫 번째는 전쟁이었다. 1814년, 프랑스로 밀고 들어온 외국 군대가 마시의 공장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두 번째는 특허의 부재였다. 원리를 이미 공개해 버린 탓에, 아무리 많은 통조림이 팔려도 그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다. 마지막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이었다. 공장을 다시 세우려 애쓰는 동안 그의 재산은 바닥까지 말라 버렸다. 발명은 온 세상의 것이 되었지만, 정작 발명가만 홀로 가라앉고 있었다. 시대를 앞선 천재를 시대는 끝내 지켜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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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무덤에 묻히다

1841년, 아페르는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 최초로 음식을 병 속에 가둔 남자의 마지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시신은 파리의 이름 없는 공동묘지에 묻혔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정확한 무덤 위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2,000프랑의 상금도, 세상을 바꾼 명예도, 그의 마지막을 지켜 주지는 못했다. 남은 것은 오직 그가 세상에 거저 준 원리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원리가, 훗날 그의 이름을 역사에 영원히 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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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뒤, 파스퇴르가 밝힌 비밀

아페르가 세상을 떠나고 약 20년이 흐른 뒤, 한 과학자가 그의 방법에 숨은 진짜 비밀을 밝혀냈다. 그 사람은 바로 루이 파스퇴르였다. 파스퇴르는 음식이 상하는 이유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때문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아페르가 끓는 물로 병을 가열했을 때, 바로 그 열이 미생물을 죽여 부패를 막았던 것이다. 아페르는 이유도 모른 채, 50년이나 앞서 정답을 손에 쥐고 있었던 셈이다. 그는 세균이라는 단어조차 몰랐지만, 세균과 싸우는 법을 먼저 알아냈다. 직관과 끈기가 이론보다 앞설 수 있음을 보여 준 놀라운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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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 하나에 담긴 14년

오늘날 열을 가해 병조림과 통조림을 만드는 이 방법은 그의 이름을 따 아페르티자시옹이라 불린다. 우리는 흔히 위대한 발명이 곧 부와 명예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니콜라 아페르의 삶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계절을 병 속에 가두는 법을 인류에게 거저 선물하고, 정작 자신은 빈손으로 떠났다. 지금 여러분의 주방 선반에 놓인 통조림 하나에도, 이름을 잃은 한 요리사의 14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 저녁 통조림을 열 때, 잠시 그 이름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그의 발명은 지금도 매일 우리를 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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