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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독초라 부르던 프랑스를 바꾼 파르망티에의 1772년 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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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초라 불리던 감자를 뒤집은 한 약사

단 한 명의 약사가 감자를 독초라 부르던 나라 전체의 식탁을 통째로 뒤집어 놓았다. 18세기 프랑스는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고 믿어 재배를 법으로 금지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감자를 사람이 먹을 것이 아니라 돼지에게나 주는 사료로 여겼다. 그런데 한 약사가 벌인 기막힌 심리전이 이 뿌리 깊은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총칼도 명령도 아닌 오직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 방법이었다. 대체 그는 어떻게 나라 전체의 입맛을 바꿔 놓았을까. 그 주인공은 앙투안 파르망티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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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시절 감자로 연명하다

앙투안 파르망티에는 18세기 프랑스의 약사이자 군의관이었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은 뜻밖에도 전쟁터에서 일어났다. 7년 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프로이센 군대의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감옥에 갇힌 그에게 매일 주어진 식사라고는 오직 감자뿐이었다. 당시 프랑스인의 상식대로라면 그는 그 감자를 먹고 마땅히 병들어야 했다. 하지만 파르망티에는 몇 년의 포로 생활을 감자만으로 멀쩡히 버텨 냈다. 오히려 그의 몸은 건강했고 병에 걸리지도 않았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감자가 독초라는 조국의 오랜 믿음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이 거대한 오해를 풀기 위한 평생의 싸움을 시작했다.

감자를 향한 프랑스의 공포

당시 프랑스가 감자를 그토록 꺼린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감자는 땅속에서 자라는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작물이었다. 사람들은 흙 속에서 몰래 자라는 이 낯선 뿌리를 몹시 불길하게 여겼다. 게다가 감자는 가지과라는 독을 품은 식물들과 한 가족이었다. 그래서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는 무서운 소문까지 널리 퍼졌다. 급기야 1748년 프랑스 의회는 감자 재배를 아예 법으로 금지해 버렸다. 감자는 그저 가축의 배나 채우는 하찮은 사료 취급을 받았다. 아무리 영양이 풍부해도 사람들 마음속의 공포를 이길 수는 없었다. 파르망티에가 맞서야 했던 진짜 상대는 바로 이 뿌리 깊은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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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에서 심리로

고향으로 돌아온 파르망티에는 곧바로 감자 알리기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그는 지극히 정직한 정공법을 택했다. 감자가 얼마나 영양이 풍부하고 안전한지 논문을 쓰고 사람들을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오랜 편견의 벽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단단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던 1772년 마침내 파리 의과대학이 감자를 먹어도 안전하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논리와 과학만으로는 뿌리 깊은 공포를 결코 걷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파르망티에는 전략을 통째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사람의 이성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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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놀라운 영양

사실 파르망티에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옳았다. 감자는 같은 넓이의 땅에서 밀보다 2배가 넘는 식량을 길러 낼 수 있었다. 게다가 감자에는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 시가 풍부하게 들어 있었다. 그래서 감자를 주식으로 삼으면 오랜 항해에서 생기던 괴혈병까지 막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흉년의 굶주림을 견디게 해 주었다. 감자는 그야말로 가난한 이들을 굶주림에서 구할 완벽한 작물이었다. 다만 그 사실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이 진짜 어려운 숙제였다. 좋은 것을 알리는 일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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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옷깃에 꽂은 감자꽃

파르망티에의 열정을 눈여겨본 사람 중에는 놀랍게도 국왕 루이 16세도 있었다. 왕은 그의 진심에 깊이 감동하여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어느 날 왕은 파르망티에가 바친 감자꽃을 옷깃에 꽂으며 언젠가 이 감자가 가난한 이들의 빵이 될 것이라 말했다고 전해진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보랏빛 감자꽃을 머리에 꽂고 무도회에 나타났다. 그러자 하루아침에 감자꽃은 귀족들 사이에서 가장 세련된 장식으로 떠올랐다. 권력과 유행을 활용한 그의 감각은 오늘날의 홍보 전략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대중은 왕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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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으로 뒤바뀐 시선

감자를 바라보는 프랑스의 시선은 그야말로 극과 극으로 뒤바뀌었다. 파르망티에가 나서기 전 감자는 병을 옮기는 돼지의 사료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감자를 식탁에 올리는 것조차 몹시 수치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그의 끈질긴 노력 이후 감자는 프랑스인의 식탁 한가운데에 당당히 올라섰다. 왕과 귀족부터 가난한 농부까지 너나없이 감자를 즐겨 먹게 되었다. 독초라 손가락질받던 작물이 어느새 온 국민을 먹여 살리는 주식이 된 것이다. 단 한 사람의 집념이 한 나라의 식문화를 통째로 갈아 치운 셈이었다. 편견은 완고했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 앞에서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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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기발한 심리전

파르망티에가 사용한 심리 전술은 하나같이 기발하기 짝이 없었다. 첫 번째 전술은 유명 인사를 이용한 만찬이었다. 그는 감자로만 화려하게 차린 저녁 식사에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명사들을 초대했다. 두 번째 전술은 왕실을 앞세운 홍보였다. 왕과 왕비가 감자꽃을 몸에 두르자 귀족들이 앞다투어 이를 따라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전술이야말로 그의 진짜 걸작이었다. 그는 파리 외곽의 감자밭에 낮 동안 무장한 병사들을 세워 삼엄하게 지키게 했다.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지킨다면 분명 엄청나게 귀한 작물일 것이라 수군거렸다. 삼엄한 경비가 오히려 감자를 귀한 보물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바로 그 호기심이 오랜 편견보다 훨씬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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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게 만든 지혜

파르망티에의 마지막 전술은 인간의 욕망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었다. 1780년대의 어느 날 그는 밤이 되면 밭을 지키던 병사들을 슬그머니 철수시켰다. 그러자 낮에 그 광경을 지켜본 농민들이 밤마다 몰래 밭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귀해 보이는 그 감자를 훔쳐다 자기 밭에 몰래 심기 시작했다. 금지된 것을 탐내는 인간의 심리를 파르망티에가 완벽하게 역이용한 것이다. 그렇게 감자는 강요가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의 손으로 프랑스 전역에 퍼져 나갔다. 누군가에게 억지로 시키는 대신 스스로 원하게 만든 그의 지혜는 지금 보아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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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마케팅 천재

파르망티에가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의 이름은 프랑스 식탁 곳곳에 여전히 살아 있다. 으깬 감자를 얹어 구운 아시 파르망티에처럼 그의 이름을 딴 감자 요리가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한 음식 역사학자는 그가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설득한 최초의 마케팅 천재였다고 평가했다. 파르망티에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오직 심리 하나로 한 나라의 식문화를 통째로 바꿔 놓았다. 오늘 우리가 즐기는 감자튀김과 으깬 감자 뒤에는 편견과 싸운 한 약사의 집요한 지혜가 숨어 있다. 때로는 강요보다 호기심이 세상을 훨씬 크게 바꾸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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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한 알에 담긴 지혜

우리는 사람의 마음이 논리로 움직인다고 흔히 믿는다. 하지만 파르망티에는 정반대의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 사람은 금지된 것을 탐내고 귀해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 단순한 심리 하나로 독초라 불리던 감자를 한 나라의 주식으로 만들었다. 오늘 여러분의 식탁에 오른 감자 한 알에도 편견을 뒤집은 한 사람의 지혜가 담겨 있다. 만약 여러분이 파르망티에였다면 이 완고한 편견을 어떻게 무너뜨렸을까. 진짜 설득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게 만드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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